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케메네스 왕조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흔히 '페르시아'라 하면 이 왕조를 가장 많이 떠올리며, 현대 [[이란]], [[아프가니스탄]](북부 한정), [[타지키스탄]]의 시조가 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. [[성경]]에도 나오는 [[키루스 대제]], [[다리우스 1세]], [[고대 그리스|그리스]]와의 전쟁으로 유명한 [[크세르크세스 1세]], [[불사 부대|불사 부대(이모탈)]] 등으로 유명하다. 아케메네스 왕조를 세운 건국자는 [[아케메네스]]지만 우리가 아는 그 대제국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[[키루스 2세]] 대왕 때부터다. 키루스 2세는 [[메디아]], [[리디아]], [[신바빌로니아]], [[엘람]] 등 수많은 지방을 정복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일구어냈고, 그를 이은 [[캄비세스 2세]]가 [[이집트 말기 왕조|이집트]]를 정복하며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. 캄비세스 2세 사후 명군 [[다리우스 1세]][* [[캄비세스 2세]]의 호위 무사 출신으로 캄비세스 사후 즉위한 캄비세스의 친동생 [[바르디야]]를 죽이고 무단으로 즉위했다. 다리우스는 자신이 [[캄비세스 2세]]의 6촌이며 자신이 죽인 바르디야는 사실 그로 변장한 가짜라고 우겼지만 이는 다리우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실제로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 멀쩡한 황제를 죽이고 제위를 찬탈했을 뿐이다. 따라서 키루스 대제의 부계 혈통은 단절되었지만 다리우스가 키루스의 딸과 결혼해서 [[크세르크세스 1세]]를 낳았기 때문에 크세르크세스 이후의 아케메네스 군주들은 전부 키루스의 모계 혈통이다.][* 흔히 그리스-페르시아 전쟁에서 패배한 이미지가 너무 부각돼서 그렇지 다리우스 1세는 확실히 명군 축에 끼는 인물이었다. 그리스에서 패배한 건 페르시아로서도 분명 뼈아픈 일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가장 부유한 국가로서 번영을 누렸다.]가 그리스-페르시아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국의 번영을 이끌었다.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은 [[크세르크세스 1세]][* 명군이라는 주장도 있고 대제의 칭호를 붙여서 높여 부르기도 하지만,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대군을 동원한 페르시아 전쟁에서 패배해서 페르시아에 혼란을 가져왔고, 말년엔 패전의 뒷수습은 나 몰라라 하고 페르세폴리스의 궁전에서 하렘을 즐기다가 암살당했다는 것이다. 이러한 행보로만 보면 암군으로 욕먹으면 먹었지 명군으로 불리기는 힘들어 보인다.]가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투입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대군을 동원한 2차 그리스-페르시아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은 잠시 침체기를 겪지만, 크세르크세스 1세의 후계자 [[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]]는 국내 전쟁 패배의 여파를 수습하고 그리스 도시들 간의 분란을 이용해 오히려 역으로 그리스와의 관계에서 우세를 점하기까지 했다.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죽자 잠시의 혼란기가 도래했다가 [[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]] 때 다시 안정을 찾았고 [[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]] 재위기에는 철권통치로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찍어누르며 제국의 세력을 과시하기까지 했다. 그렇게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키루스 2세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시절까지 약 220여 년에 가까운 전성기를 누리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했다. 하지만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환관 [[바고아스]]에게 암살당한 후부터 모든 게 꼬인다. 강력한 무력으로 제국을 휘두르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죽은 후 [[다리우스 3세]]가 겨우 바고아스를 쫓아내고 혼란을 수습했지만 다리우스 3세의 불행은 저멀리 서쪽 [[마케도니아 왕국]]에서 '''[[알렉산드로스 대왕]]'''이라는 희대의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.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전체를 통합한 뒤 물밀듯이 페르시아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. 다리우스 3세도 이를 막으려 들었지만, 알렉산드로스라는 천재를 이기지 못하고 [[그라니코스 전투]], [[이수스 전투]], [[가우가멜라 전투]]에서 연달아 대패하며 결국 끝장나고야 만다. 다리우스 3세는 무력하게 도망치다가 [[파르티아]] 지방에서 암살당했고 잔존 세력마저 모두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 무릎꿇으며 페르시아 제국은 완벽히 멸망한다.[*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페르시아 제국은 [[키루스 2세|한 개인]]에 의해 세워지고 [[알렉산드로스 대왕|한 개인]]에 의해 멸망한 나라라는 말도 있다.] 이후 페르시아 지방에는 마케도니아 계통의 [[셀레우코스 왕조]]가 들어선다. [[마라톤 전투]]나 [[살라미스 해전]] 등 그리스와의 주요 전투들은 오늘날까지 유명하다. 페르시아 제국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제국이었다. 페르시아 제국의 예상 인구수는 학자마다 달라서 1,000만 명부터 8,000만 명까지 나뉘는데, 8,000만 명은 신빙성이 너무 없으며 보통 정설은 2,000만~3,000만 명 정도로 '''당시 단일 국가로서 최대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'''.[* 당시 인도와 중국은 16대국-전국시대였으며, 설령 당시의 인도와 중국의 인구를 다 합친다 해도 페르시아보다 많다고 단언하기 힘들다. 예를 들어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BCE 221년 통일된 [[진(영성)|진나라]]의 인구가 2,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.] '''이는 당시 세계 인구의 약 25%~40%에 해당했다.''' 동쪽으로는 북인도,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, 서쪽으로는 유럽의 그리스,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에 달하는 대제국이었다. 저 유명한 [[로마 제국]]보다도 면적이 넓었던 엄청난 규모의 제국이었다. [[조로아스터교]] 신앙의 전파, 페르시아 정체성의 확립, 중동 패권국들의 틀을 잡은 왕조라는 면에서 역사적으로 의의가 깊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